마크로스7을 2002년 초에 작업했으니
정식으로 자막을 만들기 시작한지 벌써 6년째입니다.

경험이나 노하우라고 하기에는 멋적은 내용들이지만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앞으로 몇가지 내용을 정리해두려고 합니다.

프롤로그에서는 개요수준으로 정리를 하고
영상구하기-자막제작-배포 순으로
이후 자막제작에 필요한 과정을 나열해갈 예정입니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내용들로 구성될 예정이니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여러분들께 달려있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1. 감상자와의 소통

저는 자막을 기다리다 안나오니
"그냥 내가 만들어보자"라고 생각하고 뛰어든 케이스입니다.
2001년 말쯤에 하나넷 핵동에 은영전 자막을 몇개 작업해서 올린게 처음이었습니다.
영어대본이 있는 상태에서 50%쯤 들리는 일어듣기능력으로 만든
허섭스레기 같은 자막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고맙다는 댓글이 하나만 달려도 얼마나 좋았던지..

일단 블로그를 하나 열고 없는 실력이나마 하나씩 만들어 올리세요.
아무리 마이너한 작품이라도 챙겨보는 분들은 있는 법이고
처음에는 그런 분들의 조언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번역내용에 대해서 누군가가 조언(또는 충고)하면
기껏 힘들게 만들었더니 태클이나 한다고 욕하기보다
왜 이런 충고가 나왔나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투가 기분나쁘더라도 받아들일 점이 있다면 수용하세요.
그 역시 레벨업을 위한 경험치가 될 테니까요.


2. 자신만의 번역 가이드라인

한줄로 요약할 수 있는 자신만의 주제들를 정하는 겁니다.
"일본어식 어투는 가급적 쓰지 않겠다"
"단어의 1:1 번역보다는 의미전달을 우선하겠다"
"고유명사는 가급적 우리식표현으로 고쳐쓴다" 등등..

작업을 오래하다보면 몸에 익게 되는 법이지만
처음 1, 2개 작업할 때부터 이런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추후 작업할 때 애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기 편할 뿐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통일성 있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3. 국어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우리나라 국어는 제대로 알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아마 맞춤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20%를 안 넘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적은 자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감상을 할 테니
이왕이면 맞춤법을 지키는 것이 좋겠죠?

일본어와 한국어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일본어에는 한국어에는 찾아보기 힘든 수동형 표현이 많습니다.

"その人によって 1997年に つくられた物だと 考えられる"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10초 정도 생각한 후에
아래 내용을 펼쳐보도록 합시다.


사실 반백년의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영어식 문체 도입으로
국어에도 피동태라는 형태가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말로만 일제잔재청산을 외치는 것보다
직접 실천에 옮겨 보는 게 좋겠죠?



4. 시작한 작품의 완결은 감상자와의 약속

처음에는 A라는 자막가의 자막으로 보다가
A가 갑자기 손을 떼서 B로 바뀌면
고유명사나 어투가 사람마다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해당 작품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력에 자신이 없거나 취향에 안맞는 이유로
몇개 정도만 만들고 손을 떼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가급적 완결까지 만들어보는 게
자신에게도 좋고 자신이 만든 자막으로 감상했던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물론 정말 싫은 데 끝까지 작업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겠죠?

자신이 끈기가 없다고 생각되면 1쿨 작품이나 단편만 시도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6개월, 1년 단위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5. 모르면 찾아보기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대부분 사전을 뒤지면 나옵니다.
네이버다음의 일어사전에는 발음으로 찾아주는 검색기능도 있어서
들리는대로 한글로 적어도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미다"라고 검색해도 涙(なみだ)가 나온다는 거죠.

하지만 일어문법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라면 큰 사전을 사는 걸 추천합니다.
위에 언급한 온라인 사전들은 단어의 기본형만 실려있어서
어미가 변화된 단어들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자사전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

그럼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는 어떻게 찾을까요?

일단 GOO의 신조어사전을 이용해보길 추천합니다. (일본어사이트입니다)
그래도 안 나오면 들리는 발음 그대로 히라가나로 적은 다음 구글에서 검색해봅시다.
원래 한자단어인 경우 히라가나로 병기해놓은 경우가 많으니 걸려들게 돼있습니다.
만약 가타가나라고 해도 구글이 알아서 같이 찾아주니 어차피 나옵니다.

그래도 안 나오는 경우는 작품만의 고유명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식홈페이지의 설정을 뒤져보거나 애니메이션 잡지의 도움을 받아야겠죠.
한국어판 뉴타입도 나름 괜찮은 대안입니다.



6. 적당한 경쟁은 약, 과도한 경쟁은 독

처음 자막을 만드는 분이라면 25분 애니메이션 한편의 자막을
빨라야 4시간, 보통 6~8시간 정도 걸려서 만들게 됩니다.

인기작인 경우는 선배들과 같이 작업하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되는데
당연히 손에 익은 선배들을 따라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나오는데다 퀄리티까지 낮으니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괴물처럼 보이는 선배들도 처음에는 다 8시간 걸려서 만들던 사람들입니다.

5분 더 빨리 만들어보려고 날림작업을 하는 것보다
5분 더 투자해서 더 나은 퀄리티의 자막을 만드는 것이
더 빨리 인정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약간의 긴장감과 경쟁심을 갖는 것은 약이 되지만
너무 자신을 압박하는 것은 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7. 자막 작업은 취미생활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되면 자막 작업이 재미있어집니다.
어제 안 들리던 단어가 오늘 들리는 것도 재미있고
고맙다는 댓글이 주루룩 달리면 뿌듯한 느낌도 듭니다.
분명 힘은 들지만 보람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안되는 법
자신의 일상생활이 피해받지 않도록 완급조절이 필요합니다.

내일 출근/등교인데 새벽에 방영하는 작품이라고
안 자고 영상뜰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주말에 소개팅시켜준다는데 작업 때문에 안 나간다거나..
이러면 안된다는 거죠.

자막을 잘 만들어서 아무리 유명해져봤자
일본애니를 즐기는 사람은 비율로 보면 전국민의 0.1%도 안 됩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의 99.9%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오히려 일빠나 오타쿠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요.

"뭐든지 적당히 즐기세요. 설령 그것이 자막작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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